ANDTAX의 추억 / / 2022. 10. 13. 02:24

'작은아씨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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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작은아씨들'의 마지막 회까지 정주행을 하였습니다. 짬 내서 최근 드라마를 보는 것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마지막화를 남겨놓고 뉴스를 읽다가 스포일러를 당했지만, 이 글에는 최대한 스포일러가 없도록 하려고 합니다.

 

    극 중 최도일은 이른바 '자금세탁 전문가'입니다. 자금세탁은 영어로 money laundering인데,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불법적이어서 사용하기 곤란한 자금의 성질을 바꾸거나 경로를 복잡하게 바꿔 사용이 용이하게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극 중에서는 700억 원가량이 주로 문제가 되었지만, 이 돈은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20억 원의 현금다발도 문제가 되기는 하였습니다. 주인공은 20억 원이 담긴 가방을 이고 지고 가서 김치냉장고에다가도 넣었다가, 다시 그 가방 그대로 담고 면회도 갔다가 다시 원래 가방이 있던 락커에 넣기도 하는 등 일반인이 보기에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출처를 알 수 없거나 불법적인 것으로 의심되는 현금 20억이 담긴 배낭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봅니다. 로또 1등 당첨금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기 때문에, 보통 로또 1등에 당첨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데 쓰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아씨'처럼 배낭에 현금 20억을 담아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사러 갑니다. 강남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방문해서 매물을 보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건너뛰고 한방에 대출 없이 현찰박치기로 부동산을 사고자 합니다. 아!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금출처를 기입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금출처를 '오다 주웠다'라고 적었습니다. 자금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난항이 예상되지만 일단 매도인이 이를 달갑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20억에 달하는 현금이 있어도 여러분은 집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배낭에 그대로 집으로 오다가, 주거래은행을 발견합니다. 자유입출금 계좌에 20억의 현찰을 입금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준금리가 0.5%가 올랐다고 하는데 이 계좌는 연 이율이 0.1%입니다. 지점장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오셨느냐, 커피 한잔 하시겠느냐는 말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율이 조금 높은 계좌에 20억 원을 전부 입금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자소득세를 원천징수한 이자 상당액의 불로소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입금된 돈은 FIU에 통보되고, FIU는 여러분이 입금한 돈이 무슨 돈인지 알아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합니다.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거래가 되면, 일단 FIU에서도 여러분의 거래를 알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종종 거액의 현금을 한 번에 받으면 안 되어서 이를 나눠서 받자고 하거나, 하루 이틀 텀을 두자고 하면 FIU를 염려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FIU는 그 정도 꼼수도 알고 있습니다. 무주택자에 원천징수 근로소득이 4천만 원가량의 사람에게 갑자기 2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현금이 그 사람 명의의 계좌로 입금되면, 로또에 당첨된 것 외에는 마땅히 합법적인 자금출처가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럼 거액의 현금이 생겨도 이를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걸까요?

 

    여러분은 이제 현금을 이체도 하지 않고, 장롱에 넣어두기로 합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현금을 사용했습니다. 집에 20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도둑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 돈은 카드를 통해서 할부로 살 수도 없고, 부동산뿐만이 아니라 차나 요트를 살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현금영수증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다소 시원하지 않지만 안전하게 평생에 걸쳐 천천히 20억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에 20억 중 5천만 원 정도를 마치 그동안 모은 돈인 것처럼 해서 사업을 시작합니다. 1억 정도를 투자해서 작은 카페를 차렸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사장이고, 하루에 커피가 많이 안 팔려도 괜찮습니다. 운 좋게 여러분이 차린 카페는 영업이 잘 되어서 매출도 상승하고, 기존에 다니던 회사보다 더 많은 수입을 국세청에 신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커피를 팔아 번 돈이 아니라 집에 숨겨둔 현금으로 월세도 냈고, 커피콩과 빵을 사기도 했으며, 그 돈으로 리모델링도 했습니다. 사업에 들어간 비용을 경비 처리하였고, 20억의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카페를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기에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다소 이상한 세금신고가 몇 년 쌓여 세무조사가 나오기 전까지, 여러분의 사업은 탄탄대로였습니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은 화학교사인데, 마약수사국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처남을 따라 현장에 구경을 갔다가 마약 제조상인 제자를 만나서 마약상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유기화학을 전공한 주인공은 순도 높은 고품질 마약을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됩니다. 주인공의 변호사는 자금세탁의 방법으로 오락실을 권유합니다. 오락실은 소액의 현금거래가 주로 이루어지고 영수증 또한 없으며, 카드나 수표가 거래되지 않아 자금추적이 어려워서, 주인공이 마약거래를 통해서 얻은 현금을 사용해도 오락실 사업에서 얻은 수입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세차장을 인수하게 되는데, 세차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극 중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나, 일단 오락실에 비해서는 큰돈이 오가므로 자금세탁이 덜 용이한 사업인 것은 분명합니다.

 

    자금세탁을 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한데,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위장) 사업자를 하는 방법은 고급 기술도 아니고, 평범하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합니다. 물론 암시장에서 고가의 물건을 사거나, 귀금속이나 명화, 보물을 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상님이 대대로 물려준 물건이니 감정을 받고 싶다고 해서 팔거나 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700억 원은 조금 단위도 방법도 달라야 할 것입니다. 20억 원을 세탁하는 것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했는데, 700억 원이 여러분 명의로 해외에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700억 원을 전액 외화로 바꿔서 캐리어에 담아 어찌어찌 공항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공항에서 여러분의 캐리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옷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위에서 20억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작은아씨들'에서 자금세탁 전문가는 그 700억이나 되는 외화를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나눠가져 갑니다. 정말로 이렇게 저렇게 합니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고도 하다가, 그리스를 가야 한다고도 했다가, 갑자기 전액 인출하라고도 했는데, 그러한 서류에서 단 한 장도 불법적인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자금세탁과 관련된 스릴러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모방을 할 수 있으니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파나마는 운하로 유명한 그 나라이고, 케이만은 케이만제도라고 들어본 그곳이 맞습니다. 싱가포르이나 홍콩도 많이 금융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 외에도 버진아일랜드라던지, 스위스는 또 비자금으로 유명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어떻게 돈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 이후로 전 세계적으로 자금세탁이나 조세피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제도적 방안보다도 국가 간 외교문제로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BEPS니 OECD모델 조세조약이라느니 여러 가지 방법을 도입하려고 전 세계가 노력합니다만, 아무래도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국세청에 처음 근무할 때만 해도, 전 세계 조세피난처를 누비는 요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임기제 직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도 없었고, 행정사무관인 5급부터는 요원으로 파견도 보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해변에서 일광욕하며 국제조세포탈범의 뒤를 캘 방법을 연구하는 그런 것은 불가능한 꿈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금세탁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국제자격증과 국내 민간자격증 취득이 있고, 그 외의 공부를 통해서 터득하는 방법은 조금 묘연한 상황 같긴 합니다. 비록 저는 자금세탁의 기초는 조금 알아도, 아쉽게도 세탁할 자금이 없습니다. 제가 세탁할 자금이 많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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