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취득한 이야기

저는 한글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당시 나이는 중학교 1, 2학년이었으며, 컴퓨터 학원에서는 모두 한글을 사용하였습니다. 워드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학생은 보지 못했죠. 공공기관에서도 워드프로세서로 대부분 한글을 사용합니다. 단순한 문서 작업뿐만 아니라 공문서 기안 프로그램도 전부 한글에 맞춰져 있어 한글을 사용하지 않으면 업무 자체가 어렵습니다.

한글과 오피스의 공존

물론, 정부 라이선스로 오피스를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한컴오피스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관업무나 정부 과제 등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노리는 사기업들은 한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업에서 들어온 문서를 보면 종종 워드로 작업된 글을 한글로 옮긴 흔적이 보입니다.

어린 시절 컴퓨터와의 첫 만남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는 PC가 있었고, 당시 학교에서도 컴퓨터 교육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쓰는지조차 알지 못했죠. 아버지는 잠깐 486 컴퓨터를 설치해 주셨다가, 윈도우 95가 설치된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주셨습니다. 바탕화면에는 빨간색 네모난 워드프로세서가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바로 훈민정음이었습니다.

훈민정음과의 추억

훈민정음을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느리지만 잉크젯 프린터도 있었고, 출력한 문서를 보면 어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되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학급 문집을 만들 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컴퓨터가 있는 학생이 거의 없어 워드 작업을 할 사람이 매우 적었습니다. 컴퓨터가 있는 학생으로서 워드 작업을 맡게 되었는데, 선생님께 1.44인치 디스켓을 전달드렸더니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학교 컴퓨터는 한글이 설치되어 있었고, 제가 작업한 훈민정음 파일은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담임선생님께 "해결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워드 작업을 분명히 했으므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오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 후 담임선생님이 워드 작업 파일을 다시 타이핑했거나 훈민정음 설치 파일을 구해서 해결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독특한 선택

아버지는 항상 주류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설계 관련된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오토캐드 대신 ME10이라는 생소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셨고, 인터넷으로는 메가패스 대신 두루넷을 설치하셨습니다. 이런 선택으로 저는 남들과 다른 컴퓨터 환경에 노출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프로그램도 제가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잊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글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당시 나이가 중학교 1, 2학년이었습니다. 컴퓨터 학원은 모두 한글을 사용하였고, 훈민정음이나 워드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학생은 보지 못했습니다.

추억 속의 훈민정음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 지 8년째, 우연히 훈민정음이 정음글로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서비스되다가 단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음글로벌은 삼성전자와 농협, 우체국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한글을 사용하지 않으면 공공기관과 일할 수 없다는 문제는 예전 훈민정음을 사용하지 않으면 삼성과 일할 수 없다는 문제와 유사했습니다.

아버지와 삼성

아버지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시다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의도했건 아니건 저에게 삼성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삼성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면 그때의 추억을 가지고 정음글로벌이 단종되기 전에 아쉬운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삼성이 겪은 도전과 실패

삼성은 정음글로벌 외에도 심비안, 삼성자동차 등의 크고 작은 도전이 실패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 하면 굴지의 대기업으로 인식되지만, 큰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변화와 포기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권과의 문제로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컴퓨터

아버지가 컴퓨터에 훈민정음을 설치할 당시, 아버지가 삼성을 그만두게 될지, 훈민정음이 단종될지, 삼성자동차가 상장폐지될지를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삼성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몰랐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삼성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지금 추억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의 표정

문집의 원고를 타이핑하며 컴퓨터로 옮기면서, 저는 학교에서 몇 없는 컴퓨터 보유자였고, 타자도 빠르고, 무엇보다 선생님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가며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파일이 열리지 않아 난처해하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는 쉬운 문제였지만, 당시에는 저만 빼고 모두가 다른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정음글로벌과 상실감

정음글로벌을 개발하던 삼성전자 직원도, 자동차를 만들던 삼성자동차 직원도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요? 열정을 쏟고 살아온 모든 순간이 사라지거나,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른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저는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한글을 쓰는지 몰랐을 뿐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뿐이라고 위안하기에는 너무 속상한 추억입니다.